조재 작가는 대학을 졸업한 후 미래가 불확실한 작가의 길을 선택했어요. 일단 10년 동안 해보고 고민하자고 다짐했거든요. 올해로 운명의 10년을 채웠는데,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사람 앞일은 모른다지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조재 작가의 이름을 전시장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할 때마다 작업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진정 좋아하는 일의 가치를 깊게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부족해 하루하루 마음 편히 보내지 못하지만 말이죠. 그는 아주 특별한 마법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어떤 형용사로 수식될지는 모르지만, 평생 창작의 마법을 부린 존재로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지속하는 삶을 간절히 바라는 조재 작가의 이야기를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제 작업 공간은 무한한 창작의 가능성이 펼쳐지는 장소이자, 동시에 작품을 보관하고 정리하는 다목적 공간입니다. 창작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흐르지만, 때로는 작업의 일부가 과감하게 정리되고 버려지기도 하는, 살벌한 창작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주로 시각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요즘에는 릴스나 쇼츠 같은 짧은 영상 콘텐츠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 있어요. 특히 일상적이지 않거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콘텐츠에 주목합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을 주는 장면들은 노트에 기록해 두고, 그중 가장 흥미로운 소재를 선택해 제 작업에 반영하기도 해요. 또한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되는 것에만 반응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흥미 없는 주제를 검색하며 낯선 영상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그날의 감정과 컨디션에 따라 작업 방식을 달리합니다. 예민한 날에는 섬세한 작업에 집중해요. 의자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세심한 작업을 주로 진행합니다. 반면, 에너지가 넘치는 날에는 그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형 회화 작업이나 조형 작업에 몰두합니다. 창작 과정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감정과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바뀝니다.
«번역물», 아트스페이스루, 2019
최근 작업이 궁금합니다. 몇 가지 작품을 예로 들어 소개해 주시겠어요?
2023년 금호미술관에서 선보인 개인전 «누락 번역»에서는 디지털 이미지의 정보 누락과 미디어 소비 패턴을 탐구했습니다. 저는 ‘펌프질’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와 오류를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요. 특히 벡터화 방법론을 활용해 재난 이미지의 정보 소실 현상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이 과정에서 이미지가 현실을 어떻게 선택하고 변형하는지 탐구했습니다.
«누락 번역», 금호미술관, 2023
예를 들어, ‹면역력›은 웹에서 찾은 코로나 이미지를 벡터화하고 특정 형태를 선택해 입체적으로 재현하며 원본 이미지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누락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언어의 한계와 객관적 정보 전달의 어려움을 탐구했어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이태원 참사 등의 재난 이미지 또한 인터넷 기사에서 적극적으로 차용했고요.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기사를 통해 수집한 단어들로 작품의 제목을 구성해 재난의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정보 전달 방식을 반영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미디어와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명확하게 드러내며, 디지털 시대에서 우리가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20대 대학생과 후쿠시마›, 2023, 3D 프린팅, 철, 스티로폼, 가변 설치
지난 2019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하는 평면 작업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유연하게 더하기› 연작은 도시 풍경의 잔해와 일상에서 발견하는 자투리들을 통해 도시의 혼란스러운 감각을 탐구합니다. ‹부스러기› 연작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유통되는 이미지의 파편까지 캔버스에 포함하고요. 스마트폰으로 포착한 인상적인 이미지의 단편들을 임의로 배치·배열해 하나의 응집된 덩어리를 구성해 나갑니다. 이렇게 가상 공간에서 출발한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와 원본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조형적으로 번역하면서 가상과 현실 사이의 새로운 감각을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다양한 색채와 선으로 층위를 이루며 응집된 덩어리 형태가 특징인 회화 작업은, 동시대 이미지의 실체를 탐구하는 시도의 일환입니다.
근래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정보의 민주화가 초래한 정보의 품질 저하와 왜곡에 대한 문제였어요. 인터넷은 출처가 다양한 정보로 넘쳐나지만, 그 중 검증되지 않은 정보도 많아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왜곡된 정보가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되고 소비되는지 시각적으로 탐구하고 싶었어요.
작업을 진행하며 만족스러운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궁금합니다.
전시를 무사히 마쳤다는 점이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몇 개월이 지나 다시 전시를 돌아보면,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을 정도로 아쉬운 부분이 늘 존재해요, 전반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래서 해당 답변은 비밀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하하.
평소 일상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주로 미술 서적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데요. 자본주의와 관련된 책도 자주 찾아 읽어요. 정치 방송도 즐기는데요. 우리나라의 거대 양당을 대표하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봅니다. 한 가지 주제를 두고 정반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보다는 다양한 개인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이를 스스로 분석하고 검열하는 방식을 즐기고 있습니다.
«누락 번역», 금호미술관, 2023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무엇인가요?
요즘 가장 큰 관심거리는, 다소 부끄럽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처음으로 직접 하게 된 재활용과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요. 재활용 수거함을 볼 때마다 ‘정말 쓰레기가 많구나.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하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해요. 마치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도시 레오니아처럼, 우리가 매일 쓰레기 성벽을 쌓고 있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해요. 레오니아 시민들이 도시 밖에 거대하게 쌓이는 쓰레기를 모른 채 살아가는 것처럼요. 언젠가는 그 벽이 우리를 덮칠 날이 올 텐데, 요즘 그 시점이 언제일까, 자주 생각하게 되네요.
‹모퉁이와 153명›, 2023, 스텐 미러, FRP, 180 × 120 × 65 cm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작업에는 어떻게 묻어나나요?
요즘 절약하는 삶을 지향해서 그런지, 작업 재료를 사용할 때도 아끼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아낌없이 펑펑 쓰곤 했는데, 이제는 좀 더 신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작업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가 작업에 반영되면서, 예전보다 약간 소극적으로 변한 느낌도 없지 않네요.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슬럼프가 오면 작업실에 나가지 않고 휴식을 취합니다. 억지로 작업하기보다는 하고 싶다는 의욕이 자연스럽게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에요. 보통 며칠 정도 지나면 다시 작업하고 싶어지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작업실로 돌아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작업을 계속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창작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 지구적으로는 평화가 유지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꿔요. 너무 이상적인가요?
‹Vector Ball›, 2023, PVC에 시트지, 200 × 200 cm. ‹이미지펌핑›, 2023, 영상 설치, 11분 58초, «누락 번역», 금호미술관, 2023
Artist
조재(@jaejojaejo)는 디지털 이미지와 원본 이미지 사이의 교차점을 회화와 조각을 통해 조형적으로 풀어낸다. 두 요소 사이의 간극을 형상화함으로써, 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새로운 감각을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에 만연한 이미지의 실체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누락 번역»(금호미술관, 2023), «Meeting Point»(G Gallery, 2021),
«둔감제»(인터아트채널, 2020), «5분 쉬고, 30초씩»(공간413, 2018) 등이 있으며, «My World In Your World»(뉴스프링프로젝트, 2024), «Humanism Reimagined: Embracing Change»(WWNN, 서울, 2023) 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